[사설] 재정전략회의 4시간 내내 침묵한 기재부 장관
수정 2017-07-24 11:30
입력 2017-07-23 17:36
부자 중심의 증세가 실효성이 있는지, 과연 조세 정의에 부합하는지 등은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면밀하게 따질 일이라고 본다. 다만 증세 기조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난 현 정부의 정책결정시스템의 문제점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재정의 핵심 책임자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증세 논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점부터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김 부총리는 정부의 증세 기조가 확정된 21일 재정회의에서 무려 4시간 반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을 필두로 당·정·청 수뇌부가 모여 국가재정운용의 큰 방향과 전략을 결정하는 재정 분야 최고위급 의사결정체인 만큼 마땅히 주무부처 책임자인 기재부 장관이 논의의 중심이 돼야 했건만 정작 김 부총리 겸 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취임 후 줄곧 소득세와 법인세의 명목세율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온 터인 만큼 당·청의 증세 드라이브 앞에서 김 부총리로선 침묵 말고 달리 취할 행동이 없었을 법하다.
국가 정책기조를 당·정·청의 큰 틀에서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특정인의 역할이 제한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엇박자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청와대의 독주가 두드러진 가운데 정부가 들러리로 전락해 가는 조짐은 현 정부의 앞날에 심각한 우려를 하게 한다. 최근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논의 과정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신중론이 묵살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시중에는 이 총리가 잠적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실세 몇몇이 사실상 결론을 내려놓고는 형식적 토론을 거쳐 공식화하는 식의 ‘무늬만 소통’이 지속된다면 정부와 공공기관은 권력만 바라보는 복지부동으로 나아갈 것이다. 문 대통령은 책임총리와 장관책임제를 공언해 왔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2017-07-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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