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개혁 당위성 확인한 진상조사위 발표
수정 2017-04-19 22:05
입력 2017-04-19 21:40
진상조사위는 사태의 발단이 된 판사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를 지시한 당사자는 대법원 고위 간부인 이모 상임위원으로 확인됐고 이를 근거로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상임위원은 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학술대회 연기와 축소의 필요성을 논의했고 여기서 결정된 내용이 실제로 집행됐다고 한다. 적지 않은 판사들이 어제 내부 통신망 등을 통해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는 조사위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구회가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하자 법원행정처가 중복 가입 학회를 자동 탈퇴시키겠다고 공지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이 책임을 특정인에게 떠넘기는 것 자체가 꼼수라는 지적도 많다. 그동안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설이 무성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도 이런 의혹까지 해소하지 못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자유로운 학술 활동을 견제한 것은 진상조사위가 지적했듯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판사는 법률에 규정한 대로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다.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 방안을 포함한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공론화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사법 시스템은 결국 국가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7-04-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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