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계형 信不者 빚탕감 취지 좋지만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4-12-28 00:00
입력 2004-12-28 00:00
정부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등과 같이 소득이 없어 채무상환이 어려운 ‘생계형’ 신용불량자에 대해 부채를 탕감하는 등 종합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와 관련,“기백만원, 기천만원의 빚 때문에 날품팔이 말고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면서 “경제 큰 틀에서 정부와 금융기관에서 검토해볼 문제”라고 밝혔다. 정부가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거쳐 불가피한 사정이 있거나 도저히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신불자에 한해 멍에를 벗겨주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접근방식에는 현행 사회안전망에 대한 개념이해에 혼란이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직접 지원대상인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자활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신불자에서 벗어나게 하더라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자립이 어렵다는 얘기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신용불량 기초생활보호대상자부터 구제하겠다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이 된다. 오히려 정부의 지원대상에서 소외된 차상위계층이 기초생활보호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신용불량 구제책을 이들에게 맞추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배드뱅크, 개인워크아웃, 개인회생제 등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각종 지원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대다수의 차상위계층은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수혜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특히 생계형 신불자 구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만큼 과거처럼 금융사들에 무조건 빚을 탕감하라는 식으로 부담을 떠넘겨선 안 된다. 정부도 일정 부분 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그리고 신용사회 추구라는 헌법적 가치와 상반된 정책을 추진하는 이상 구제대상자에게는 직업훈련이나 사회봉사활동 등 거기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투명하고도 객관적인 잣대로 대상자를 선정하되 신용질서가 문란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신불자 구제에 앞서 그 필요성에 대한 여론부터 환기시켜야 한다. 도덕적 해이나 형평성 시비를 잠재울 수 있는 정교한 대책을 촉구한다.
2004-12-28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