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우리말] 지리하다와 지루하다/오명숙 어문부장
오명숙 기자
수정 2020-09-03 01:45
입력 2020-09-02 17:36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같은 상태가 오래 계속돼 따분하고 싫증이 나다’란 의미로 ‘지리하다’를 쓴 것이다. 하지만 ‘지리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지리하다’를 찾아보면 ‘지루하다’의 잘못이라고 나와 있다. 1988년 한글 맞춤법 개정에 따라 ‘지리하다’가 비표준어가 된 것이다.
표준어 규정에는 모음의 발음 변화를 인정해 발음이 바뀌어 굳어진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돼 있다. 즉 예전에는 ‘지리하다’로 쓰여 왔으나 발음이 변해 ‘지루하다’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임에 따라 ‘지루하다’를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다. ‘상치’가 ‘상추’로, ‘미싯가루’가 ‘미숫가루’로 바뀐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따라서 ‘지리하게 이어지는 장마’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가, ‘지리한 공방’은 ‘지루한 공방’이 어법에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지루하다’가 ‘따분하고 싫증나다’란 의미에 방점이 찍힌 데 반해 ‘지리하다’는 ‘오래 끈다’는 의미가 더 크다는 점에서 둘 다 표준어로 삼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oms30@seoul.co.kr
2020-09-0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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