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이야기] 한밤의 별 산책/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수정 2018-10-22 18:18
입력 2018-10-22 17:50
초창기엔 길이 구불구불해 제법 산책 기분이 났지만 이제는 길이 곧게 펴져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5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천문대 정문 주차장까지 이어진 1㎞ 남짓 숲속 산책길을 많이 이용하는데 한밤엔 이상하게 소름이 돋아 잘 다니지 않는다. 시루봉으로 가는 길은 하늘이 활짝 열린 능선이라 한밤에도 마음이 편안하다. 머리 위 별빛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 같다. 바람이 불고 도토리가 떨어져서 구르는 소리도 들린다.
시루봉에 오르면 시야가 활짝 트인다. 동쪽 하늘에 마차부자리, 황소자리, 그 아래로 오리온자리 등 겨울 별자리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서쪽 하늘엔 견우와 직녀성, 백조자리 등 여름 별자리가 지고 있다. 그 사이로 옅은 은하수가 길게 이어졌다. 북극성 위로 은하수를 따라 카시오페이아자리가 높게 떠 있고, 북두칠성은 1.8m 돔 옆으로 낮게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다. 늦은 가을 밤하늘의 풍경이다. 정작 가을의 대표 별자리인 페가수스자리와 안드로메다자리는 별로 재미가 없고, 찾기도 쉽지 않아 그냥 포기한다.
도시의 불빛이 훤하지만 머리 위에는 옅은 은하수가 흐르니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좋다. 연중 가장 상쾌한 시기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얹어서 빙 둘러 도시 풍경과 밤하늘 사진을 담는다. 곧 떠오를 달을 넣은 일주운동 사진을 위해 30초 정도 반복해서 찍도록 인터벌 촬영을 시작한 후 카메라를 그대로 둔 채 연구실로 돌아온다. 이런 날은 이 같은 산책을 두세 번은 더 해야 하는 멋진 밤이다. 보현산천문대를 찾는 천문학자들이 항상 기대하는 그런 날이다.
2018-10-2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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