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칼럼]짝퉁야당 같은 여당
수정 2010-03-23 00:32
입력 2010-03-23 00:00
한나라당은 사실 앞에서 끄는 리더십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성장·선진 등의 가치에 치중해 있고, 구성원도 전통적인 엘리트층에서 주로 충원한다. 국회의원 구성을 보면 해외유학파, 행정·사법고시파 등 엘리트와 부유층 출신이 많다. 10년만에 집권하게 된 것도 경제난을 타개할 엘리트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을 보면 다수의 비판에 초심을 잃은 것인지, 자신이 내세웠던 리더십의 정체성에 대해 둔감해진 듯해 보여 의아스럽다.
대표적인 징표가 지방선거에 임하는 태도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정권심판의 마당으로 활용하려는 야당의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해묵은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유독 정권 유지와 탈환의 싸움이 진작부터 과열되는 양상이다. 야당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 중인 한명숙 전 총리가 무죄로 판명나면 정권심판의 지렛대로 활용할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여당에서도 역시 총리급 거물을 맞불로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야당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여당이 야당처럼 한다면 짝퉁이라는 소리밖에 들을 게 없다. 3년 전 대선에서 선진국가를 앞당기자고 해 압도적인 표차를 이끌어냈던 여당이기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과거와 달라야 한다. 지방자치를 중앙정치의 부속품으로 변질시키는 일에 합세하기보다, 지방자치의 본령을 굳건히 다지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선진국을 주창한 리더십의 내용일 터이다.
지방자치의 병폐가 천석고황의 지경에 이르렀음엔 누구나 동의한다. 지방의원은 지역 국회의원이 비리조사로 검찰에 출두할 때 우르르 몰려가 병풍처럼 주변을 에워싸기 일쑤다. 자치단체는 호화청사를 짓고 엉터리 공기업을 마구 만들어 혈세를 나눠 먹는다. 지방자치 초기 수천만원이라던 사무관 승진 로비 비용이 억대를 넘었다는 설이 공공연하다. 여당은 이런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개혁할 방안을 고민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방선거는 지방의 일꾼을 뽑는 행사다. 한나라당 스스로 이번 지방선거를 다음번에 더 큰 자리를 차지하려는 디딤돌로 활용하려는 천박한 후보를 걸러내야 할 것이다. 유권자의 일원으로서 ‘후진성을 벗겨내고 멋진 지방자치를 세계에 뽐내겠다.’는 약속을 듣고 싶다. 여론몰이가 먹히는 시대를 맞아 손해볼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 수 있다. 그러나 소신을 갖고 일하는 지방자치 후보를 내세워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자신의 리더십을 지키는 길이다.
jaebum@seoul.co.kr
2010-03-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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