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의학은 어떻게 진보하는가/심재억 의학 전문기자
수정 2011-05-24 00:44
입력 2011-05-24 00:00
요즘의 의료를 이런 시시콜콜한 역사적 기억으로 환치하기는 어렵습니다. 거대한 의술의 진보가 있었고, 과학기술의 역할이 극한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의료가 천박한 상업주의에 결박되면서 신성성의 자리에는 보란 듯 ‘돈’과 ‘퇴행적 권위의식’ 그리고 ‘조작된 허명(虛名)’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의사들은 자신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환자들과 멀어졌고, 의학의 진보는 그 지점에서 발목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의료계 전반에 촘촘하게 그물을 드리우고 있는 거대한 상업주의의 획책이 낳은 결과이며, 어떤 진보도 이런 상업주의와 야합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예단은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적지 않은 의료인들이 이런 상업주의와 결탁하려고 기를 쓰는 판국에 함부로 의학의 진보를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누구도 진보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랬기에 가능해 보이지 않던 시도들이 의학의 전범(典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치료 영역은 확대됐으며, 의사들의 권위는 강화됐습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의 대동맥 판막질환 근치술인 ‘카바 수술’ 논란이 그것입니다. 다양성의 사회에서 논란은 피할 수 없으며, 논의는 중요한 검증의 절차입니다. 그러나 논란과 논의가 공정한 논리 대결이 아니라 증오와 배제의 배설구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신성성의 후예인 의학자들이 나서 ‘카바’를 죽이려 하고, 복지부는 뒷짐을 진 채 눈만 찡긋거립니다. 의학사를 바꿀 씨앗 하나 싹 틔우기가 참 어려운 나라, 한국의 의료계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진보의 수난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고,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밥그릇 때문에 중요한 의학적 성과를 짓밟으려 한다고 읽고 있습니다.
의학 진보의 주체는 의사입니다. 오늘날의 눈부신 의학적 성과가 온전히 의학자들 공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학적 퇴보 역시 의료인들의 선택입니다. 의학자들이 냉철하고,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기술력을 인증했고, 의료 기준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의사들이 배우겠다고 줄을 서는 ‘카바’가 유독 국내에서만 이런저런 시비에 내몰리는 상황이 난감해 보입니다. 물론 모든 의사들이 아니라 소수의 획책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선각자들이 그랬듯 지적 확신에 따른 도발인지, 아니면 시비의 배후에 국민의 생명과 국가경쟁력까지도 방기해야 할 만큼 중요한 그 무엇(?)이 따로 있는지를 말입니다.
jeshim@seoul.co.kr
2011-05-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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