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토굴살이] 단세포적인 사고 길들이기
수정 2006-11-29 00:00
입력 2006-11-29 00:00
나는 이십대 초에 중학교 준교사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다. 당시 고교 졸업생이던 나는 한 고시 합격생의 수기를 읽고 그가 독파했다는 책들을 모두 사다가 밑줄을 쳐가면서 속속들이 읽었다.‘삼국유사’ ‘삼국사기’ ‘한글갈’ ‘우리말본’ ‘국문학사’ ‘고가(향가)연구’ ‘고려가요’ ‘시조정해’ ‘훈민정음발달사’ ‘고전문학강독’ ‘문학개론’ ‘시가사강’ ‘음운론’ 등. 우리 신화, 설화, 신라 향가, 고려가요, 시조, 고대 소설이나 우리 말 어원 밝혀내기가 한없이 재미있어 그것들을 줄줄 외다시피 하고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낙방하고 말았다.
나중에 경험자에게 들으니, 내 시험공부 방법이 틀렸다고 말했다. 출제 위원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고, 깊이 파고들지 말아야 하고, 출제될 만한 것들만 골라(경향에 따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험공부 방법을 수정하여 재도전하지 않았다. 출제위원들이 요구하는 정답을 알아맞히는 식의 공부가 짜증났던 것이다. 책 한 권을 집어 들면 끝까지 속속들이 읽어버리는 데에서 재미를 느끼는 나의 학습방법보다 더 큰 문제는 나의 사고 체계에 있었다.
나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문득 수평적인 논리를 동원하여 말하곤 하는 미욱한 사람이다. 사고 체계가 나 같은 사람은 단세포적인 수직사고를 요구하는 정답을 명쾌하게 써내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수직적인 논리는 일차원적인 것이다. 수직적인 논리(사고)로 풀리지 않는 것을 우리는 수평적인 논리(사고)로 풀어야 한다. 사고 혹은 사유는 훈련에 의해서 체질화되는데, 수직적인 논리만 훈련 받은 사람들은 절벽처럼 막혀 있게 마련이다. 컴퓨터와 논술은 수직적인 논리를 도와줄 뿐 수평적인 사고를 배제시킨다. 수직 논리는 흑백의 이념을 만들고 그 이념은 세상을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 싸우게 한다. 수직 사고에 길들여진 사회와 역사는 시멘트 블록 담(절벽)처럼 견고해지고 그 견고함은 절망적인 잔혹을 불러들인다. 우리 사회가 흑백 논리로 치닫는 까닭은 논술로 인한 단세포적인 수직 사고의 훈련 때문이다.
수직적인 논리만 펴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창조 능력이 신장되지 않는다. 창조 능력은 수직적인 사고만으로는 안 되고,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인 사고가 어우러져야 생긴다. 현대는 창조적인 사고를 가진 인재들이 필요한 세상이다. 이러한 때에 논술 시험을 고집하는 교육부 지도자들이야말로 컴퓨터적인 수직 사고에 얽매인 자들이다. 그들에게 인재 양성을 맡겨놓고 있는 우리 앞날은 참으로 한심하다.
소설가
2006-11-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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