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 외교의 헝그리 정신/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수정 2014-01-11 00:00
입력 2014-01-11 00:00
그렇다면 이런 일본을 경계해야 할 주미 한국대사관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한국대사관 영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초기 화면 정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사관의 인턴 직원 채용 공고였다. 그 왼쪽 옆으로 또 다른 인턴 직원 채용 공고가 있었다. 그 아래로 한류(韓流), 한·미 동맹 60주년 행사 소식 등이 보였다. 한국 대통령이나 정부가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초기 화면에서는 볼 수 없었다.
물론 홈페이지만으로 전체 외교의 질을 재단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대사관의 어느 한 명이라도 일본 홈페이지를 ‘정찰’했더라면 한국 홈페이지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난달 인권과 화해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타계했을 때 미국에서는 건강이 안 좋은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만 빼고 생존한 전·현직 대통령 네 명이 모두 남아공 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지난 3년간 미국에서 취재하면서 이렇게 미국 전·현직 대통령 전원이 장례식에 ‘총출동’한 경우는 기억에 없다. 우리가 위안부 만행 등 인권 범죄를 저지른 나라라고 비판하는 일본에서도 이례적으로 나루히토 왕세자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반면 한국은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우리 외교 당국이 이 사안을 안이하게 보고 ‘판단 미스’를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난달 남수단 주둔 한빛부대가 일본 자위대로부터 탄약을 지원받은 일 역시 한국 당국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됐을 파문이었다.
지금 일본의 외교를 보면 세계 3위 경제대국의 모습이 아니다. 저 밑바닥의 ‘헝그리 복서’처럼 이를 악물고 뛰고 있다. 반면 아직 국력 면에서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갈 길이 먼 한국의 외교는 챔피언처럼 배가 부른 모습이다. 201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은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의 무서운 도전에 식겁해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10년 전 삼성은 지금의 5분의1 크기의 구멍가게 같았다. 앞으로 까딱 잘못하면 그렇게 된다.”
‘헝그리’하지 않은 한국 외교관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carlos@seoul.co.kr
2014-01-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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