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클라리넷 연주자의 근황/고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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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2-11-10 00:30
입력 2012-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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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같은 큰 병에 걸려 헤매는 사경(死境)

부처를 본 사람은 머리를 깎고

예수를 본 사람은 신학교로 간다

설마 돈이 보여 장사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겠지….

방과 후 청소 마치고 내려가던 고등학교 때 음악실 계단에서 듣던,

창 너머

텅 빈 교정 중앙 화단에 샐비어가 붉디붉은데

고요를 흔들며 퍼져나가던,

그래서 샐비어 꽃술을 간질이던 클라리넷 소리

나의 옛 클라리넷 연주자는

꽃술이 움직이듯 내 마음의 고요를 흔들어놓고

이제는 클라리넷을 놓았다 한다.

사경을 헤매고 그가 본 것은

그의 마음 깊은 저곳이었던가

나의 샐비어만 나와 함께 여름이 길다.

2012-11-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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