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학생 음주시위/육철수 논설위원
수정 2012-09-27 00:44
입력 2012-09-27 00:00
일상사가 다 그렇듯, 절제의 미덕은 사람을 천당과 지옥으로 갈라놓는다. 10여년 전, 전도유망하던 어느 유명한 검사장은 술김에 ‘파업유도’ 발언을 했다가 졸지에 그 좋은 자리와 권력을 잃고 말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며칠 전 집권당의 새 대변인은 술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욕설을 해댔다가 그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중국 진(晉)나라의 왕희지는 ‘술 한 잔에 시 한 수’(一觴一詠, 일상일영)를 읊고, 당(唐)나라 때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수’(斗酒詩百篇,두주시백편)를 지었다는데, 왜 술 버릇만 세월이 갈수록 고약해지는 걸까.
그젯밤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청년대선캠프’ 소속 대학생 30여명이 ‘학내 음주금지령 규탄대회’를 열어 음주시위를 한 것이다. 이들은 행인이 오가는 보도에서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삼겹살을 구웠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될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서 캠퍼스 내 음주를 금지하기로 한 데 항의하기 위해서였단다. 마련한 술의 양으로 미루어 질펀한 술판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하려고 한 것 같다. 별난 시위라 여기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비(非)지성적이며 품위를 잃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캠퍼스 안에서 시위를 해도 될 일을 시민들의 퇴근길을 방해해 가며 소동을 피울 것까지야…. 음주시위도 폭력시위 못지않게 보기에 흉하다.
대학생들의 음주문화는 그동안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는 폭음과 강제주(酒) 때문에 해마다 2~3명이 생명을 잃었다. 그렇다고 대학생들의 생활 근거지인 캠퍼스에서 음주를 법으로 막는다고 될 일인가. 총학생회의 자율에 맡기면 효과적일 텐데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며 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젊음의 낭만을 즐기고 심오한 토론 등을 통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자면 술도 좀 필요하다. 다만 대학생활의 근간은 술이 아니라 학문이기에, 지성인답게 음주를 절제하고 멋과 운치가 있는 음주문화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12-09-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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