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후계자/주병철 논설위원
수정 2012-03-26 00:22
입력 2012-03-26 00:00
후계자 선정에 민감한 부류는 돈이 많은 계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이다. 삼성·현대그룹 등 재벌들은 2세·3세 등 혈족에게 물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발을 뻗고 잔다. 그만큼 혈족 승계에 집착이 강하다. 그런데 누가 물려받느냐에 따라 진통이 뒤따른다. 얼마 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한때 그룹의 후계자로 주목받다 밀려난 이맹희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주식 인도 청구소송을 냈다. 2000년 초 현대그룹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는 장남이 밀리면서 형제 간에 혈투가 벌어졌다. 틀어지면 앙숙이 따로 없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가 후계자 제프리 이멜트를 발탁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내부 임직원 15명을 경쟁시켜 3명으로 압축한 뒤 꾸준한 검증을 거쳐 2001년 최종 낙점했다. 미국 월마트의 창업주인 샘 월튼, 크라이슬러사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였던 리 아이아코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의 후계자도 모두 경영능력으로 발탁됐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후계자 후보 4명을 두고 고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동서양의 정치권도 비슷하다. 한 예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후계자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낙점한 것은 육사 동기라는 친분이 주된 이유였고, 그게 자신의 후일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의 3대 세습도 이런 틀에서 이뤄졌다. 반면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죽기 전 “토머스 제퍼슨이 아직 살았으니….”라며 자신과 재선에서 싸워 이긴 공화당의 제퍼슨 대통령(3대)을 가장 믿을 수 있는 미국의 후계자로 생각했다. 개인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해서다.
재단의 기부금 편법 운용을 둘러싸고 불거진 숙명여대와 재단 간의 갈등이 볼썽사납다. 한때 멘토와 후계자의 관계였을 정도로 친했다는 이경숙 전 총장과 한영실 총장은 사적인 관계로 이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대학 발전을 위해 한 총장을 후계자로 생각했다면 이 전 총장이 욕심을 먼저 버리는 게 순서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2-03-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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