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바보 3주기/임태순 논설위원
수정 2012-02-11 00:00
입력 2012-02-11 00:00
우리 주위엔 우직한 바보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렸다. 부산에 출마하면 떨어질 줄 알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여러 번 나가 고배를 마셨다. 결국 지역감정을 타파하려는 진정성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대통령의 길로 이끌었다. 정계의 ‘원조 바보’는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김근태 전 의원이다. 그는 옛 민주당 경선 때 스스로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고 고백했다. 말 바꾸고 불의와 타협하는 현실에서 그는 손해 볼 줄 뻔히 알면서도 원칙은 양보하지 않는 바보였다. 지난해 숨진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도 바보 반열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를 하면서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눈 팔지 않고 파고드는 집요함이 없었다면 정보기술(IT)분야에서의 그의 성공은 요원했을 것이다.
노자는 ‘대지약우’(大智若愚)라고 했다.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는 말이다. 버릴수록 채워지고 아낌없이 베풀수록 더 많은 것이 돌아오는 게 세상이치다. 바보가 아니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파스텔로 듬성듬성 그린 자신의 자화상에 ‘바보야’라고 적어놓은 자칭 바보다. 약자와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사랑을 실천해온 평생 바보였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16일이면 어언 3년이 된다. 김 추기경 선종 3주기를 맞아 서울 명동 등지에서 자선음악회, 사진전, 전시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가 더욱 그리워진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12-02-1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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