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그림 속 과학/최광숙 논설위원
수정 2011-07-04 00:34
입력 2011-07-04 00:00
명화 속에 자주 표현되는 별과 달. 밤하늘의 상징에 머물지 않고 명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초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과학으로 명화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지난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의 힘을 빌려 명화는 먼 훗날 병든 화가의 어두운 삶을 알려 주기도 한다. 베일에 싸였던 그 시대의 생활을 소상히 비춰 주기도 한다. 최근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이지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신윤복의 미스터리한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의 의문도 풀렸다고 한다. 열쇠는 다름아닌 그림 속의 달이었다. 천문학자인 이태형 충남대 겸임교수는 달의 모양 등을 통해 달밤의 연인을 그린 날이 1793년 8월 21일이라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고흐의 불후 명작 ‘해바라기’ ‘밤의 카페’ 등이 온통 노랑색으로 꿈틀거린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 싸구려 술 ‘압생트’을 즐겨 황시증(黃視症)에 걸렸기 때문이란다. 법의학자 문국진 박사는 의학의 힘을 빌려 명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가 점차 몸매가 풍만한 여성을 그린 것은 류머티즘 때문이라고 봤다.
모딜리아니가 목이 사슴보다 기다란 여인을 주로 그렸던 것도 심한 난시증이 원인이란다. 발레하는 여인들을 자주 그렸던 드가도 ‘발레시험’ 등에서 그림들의 중심부를 여백으로 두고 주변에 사물을 배치한 것도 시력장애의 산물이란다.
실제 화가들 중에는 과학자인 이들이 적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필두로 미켈란젤로, 피카소 등은 꼼꼼한 관찰과 치밀한 과학적 계산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들은 화가이자 과학자였던 것이다. 빛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인상주의 창시자 모네의 그림도 빛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추적한 집념의 결과였다고 한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술과 과학. 경계의 벽을 허물기도 하고 융합하니 숨겨진 진실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1-07-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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