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산 사람’들이 행복한 제사/구혜영 산업부 기자
수정 2010-09-25 00:46
입력 2010-09-25 00:00
명절이면 일제히 장남(아들) 집에 가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다.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차례 준비로 직장에서 조퇴라도 할라치면 직업의식 운운하는 일부 남성들의 시선에도 시달린다(이런 남성들일수록 제사 잘 모시는 여성들에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번 추석에도 차례상 때문에 죽음을 택한 아내가 있고, 이혼율도 명절을 전후로 가장 높다고 하니….
세상이 변해 남자들도 거든다고 하지만 제사에 관한 한 남녀의 역할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제사 문화를 깊이 들여다 보면 재산을 상속 받는 맏아들을 통해 호주를 승계하고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숨은 뜻도 부정할 수 없다. 호주제가 없어지고 다문화사회라 하는데도 이처럼 공고한 ‘핏줄 문화’가 있을까 싶다.
뜻있는 사람들이 ‘내 제사 거부운동’을 펴고 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말자는 운동이다. 내 제사로 내 아들을 이혼의 위기에 내몰리지 않게 하려는, 내 제사로 내 딸이 시댁 눈치를 보지 않게 하려는 운동이다. 몇년 전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나 죽은 뒤 제사 지내지 말고 각자의 집에서 기도나 해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제사 문화도 세상이 좋아지는 만큼 나아지길 바란다. 남성은 누리고 여성은 고통 받는 제사가 아니라 조상 덕택에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는 제사로 말이다. 살아 있는 후손들이 행복해야 조상들도 흐뭇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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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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