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공짜 수학여행/이춘규 논설위원
수정 2010-08-10 00:00
입력 2010-08-10 00:00
수학여행은 주로 학년 단위로 행해지는 집단숙박여행이다. 문화·역사 유적을 탐방하고 자연을 관찰한다. 2~4일간이 일반적이다. 경주, 부여, 설악산, 속리산, 제주도 등은 전국구 수학여행지였다. 최근 들어 일부 고등학교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한다. 일본 고교생들이 우리나라로 수학여행 오는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일본 수학여행단 유치 경쟁도 뜨겁다.
수학여행은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다. 거장 유현목 감독은 1969년 총천연색 영화 ‘수학여행’을 만들었다. 섬 분교 초등학생들의 실화가 토대다. 아역배우들을 신문에 모집공고를 한 뒤 선발해 화제가 됐다. 현대 문명의 혜택을 모르는 섬소년들의 서울 수학여행기다. 돈이 없고, 일손이 부족하다며 수학여행을 반대하는 부모들을 교사가 설득, 별천지 서울에 간다. 세탁기, 냉장고도 보고 손수레를 선물로 받고는 “섬을 서울처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진 내용을 사실감 있게 담았다.
수학여행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툭하면 초·중·고교 수학여행 비리가 적발된다. 최근에도 뇌물수학여행에 연루된 전·현직 교장 138명이 처벌을 받았다. 단속된 교장들은 2박3일을 기준으로 숙박 업체에서는 학생 한 명당 8000~1만 2000원을 받았다. 버스는 1대 당 하루에 2만~3만원씩의 사례비를 받았다. 학생들이 수학여행비로 낸 10만~20만원 가운데 1만~2만원은 교장이 꿀꺽한 셈이다.
공짜 수학여행시대가 열릴 것 같다. 강원교육청이 내년부터 강원지역 전체 초·중·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경비로 1인당 10만~13만원씩을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 81억 7000여만원이 투입된다. 돈 없어 수학여행을 못 가는 일이 사라질 것 같아 다행이다. 다른 시·도 교육청으로 확산될지 벌써 주목된다. 비리수학여행 문제를 없애는 계기가 될지도 관심이다. 무상급식 확대, 교복 지원 등과 함께 포퓰리즘 논란을 일으킬 소지도 있어 보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0-08-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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