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이준 열사와 기자/정은주 사회부 기자
수정 2010-04-17 01:04
입력 2010-04-17 00:00
영국 기자 윌리엄 스테드가 편집인을 맡고 있던 ‘평화회의보’가 6월30일 자에 성명서 전문을 실으며 “1884년 모든 강대국에 의해 독립이 보장, 승인된 대한제국은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또 그는 한국 대표단의 기자회견을 주선하고, 불어에 능통한 이위종(당시 20세)을 인터뷰해 ‘축제 때의 해골’이라는 제목으로 7월5일 자 평화회의보에 실었다. “닫혀 있는 회의장 문 앞에 앉아 있던 대한제국 이위종”을 만나 일문일답을 나눈 것이다.
스테드 기자가 묻는다. “일본은 강대국이다. 우리가 헤이그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이위종은 분노하며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법의 신이란 유령일 뿐이며 정의를 존중한다는 것은 겉치레일 뿐이다. 왜 대포가 유일한 법이며 강대국은 어떤 이유로도 처벌될 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하지 않느냐.”
7월14일 이준 열사는 묵고 있던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헤이그에 도착한 지 20일 만이었다. 그의 죽음도 평화회의보와 네덜란드 신문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헤이그 ‘이준 열사기념관’에서 당시 신문을 훑어보며 역사를 증언한 기사는 100년 후에도 살아 숨쉰다는 걸 절감했다.
ejung@seoul.co.kr
2010-04-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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