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DJ와 TV 53년/진경호 논설위원
수정 2009-08-20 00:54
입력 2009-08-20 00:00
‘정치인에게 있어서 인류는 도구(tools)와 적(enemies) 두 부류뿐’이라고 한 니체의 말에 견줘볼 때 적어도 DJ에게 TV는 많은 도구를 확보할 유용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TV가 일반화되지 않은 1960년대까지 정치인의 도구가 ‘군중’이었다면, 70년대부터는 TV를 매개로 한 ‘대중’이 정치인의 도구였고, 숱한 명언을 남긴 DJ는 바로 백사장 군중정치시대의 막내이자, TV 대중정치시대의 맏형 격이라 하겠다.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몰려든 수십만명 앞에서 사자후를 토해내던 71년 7대 대선, 그리고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자택연금에서 풀려나면서 정치지도자 반열에 우뚝 선 그의 모습이 TV에 비칠 때 대중은 열광했고, 군부세력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정치 동갑내기 DJ와 TV는 1997년 15대 대선 때 기어코 일을 냈다. 대선 역사상 처음 선보인 TV 후보토론회에서 그는 고난의 삶을 이겨낸 여유로운 유머와 화술로 라이벌 이회창·이인제 두 후보를 눌렀고, TV는 DJ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DJ의 영면과 더불어 TV와 함께했던 대중정치시대도 기울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장한 대중은 더 이상 TV를 통해 세상을 읽던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DJ의 명연설 대신 미네르바가 세상을 흔들고, ‘아고라’에서 의기투합한 스마트몹(smart mobs), ‘똑똑한 군중’들이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세상이 됐다. 정보화시대를 맞아 신직접민주주의가 도래하면서 대의정치는 설 땅을 잃고, 10년 뒤면 할 일을 잃은 국회의원이 아예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게 미래학자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의 말이다. 저무는 건 3김(金)만이 아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2009-08-20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