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나는 소통한다, 고로 존재한다/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수정 2009-08-06 01:20
입력 2009-08-06 00:00
우리사회에 말 잘하는 정치가는 많지만 잘 듣는 정치가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소통장애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전자보다는 후자의 정치가가 국민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19세기 후반 영국을 이끈 위대한 두 정치가가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이다. 디즈레일리는 33세에 의회 의원이 되어 64세에 총리가 됐다. 유명한 연설가인 그의 라이벌 글래드스턴은 자유당 총재를 네 번이나 역임했다. 이 두 사람은 여러모로 대조가 된다. 한 젊은 여인이 어느 날 저녁 글래드스턴과 함께 식사를 했고, 그 다음날 저녁에는 디즈레일리와 식사를 했다. 나중에 누가 이 두 사람에게 받은 인상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래드스턴과 식사를 나눈 후에 나는 그분이 영국에서 제일 총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디즈레일리와 식사한 후에는 영국에서 내가 제일 똑똑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글래드스턴은 자기 말을 많이 했다면, 디즈레일리는 주로 그녀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 같은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적어도 소통의 측면에서는 디즈레일리가 글래드스턴보다 한 수 위다. 나중에 그 여인이 누구의 정당에 투표했을까는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민주사회에서 의사결정은 여론의 시장인 공론의 장(public sphere)에서 이뤄져야 한다. 공론의 장이란 나의 진리를 홍보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진리를 합의해 나가는 장소다. 정부와 여당이 우리는 진리를 아는데 국민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소통은 절대로 안 된다. 반대로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가 아직도 좌파적 거대담론에 빠져서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투쟁만을 일삼는 것 또한 소통의 장애요인이다.
홍보란 원래 ‘public relation’의 번역어다. 이 번역어는 정보 송신자의 의지만이 반영되어 있을 뿐 수신자의 역할이 누락돼 있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이 같은 일방적인 홍보는 정부와 국민이 쌍방향적인 공적 관계(public relation)를 맺는 것을 지향하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정보를 일방적으로 왜곡해서 내려보내는 선전(advertising)으로 전락할 소지가 있다.
대통령이든 정당의 지도자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바탕으로 ‘이성의 사적인 사용’을 하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소통은 개인이 이성의 ‘사적인 사용’이 아닌 ‘공적인 사용’을 하기 위해 공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뤄진다. 다른 의견을 가진 타자는 나의 적이 아니라 나를 공적인 존재로 만드는 내가 모르는 나이기에, 이런 테제가 성립한다. “나는 소통한다. 고로 존재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2009-08-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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