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회한/김성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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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6-29 00:50
입력 2009-06-29 00:00
빵집. 약속장소가 하필 빵집이람. 독일로 건너가 산 지 오래됐다지만…. 50줄의 이방인(?)에겐 영 어색한 자리. 약속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사방엔 10대들의 재잘대는 소리만 그득하다. 여기저기서 흘깃흘깃 겨눠오는 눈길들. 피곤하다.

“냠냠.” “냄냄.” 시선들을 피하다가 만난 앞자리의 대화. 20대 중반 엄마와 2∼3살쯤의 어린 딸. 빵을 먹이며 “냠냠.”을 강요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번번이 “냄냄.”으로 응수한다. 발음탓이려니 했는데 아니다. 생글생글 웃어가며 엄마를 놀린다.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벼락처럼 터진 울음. 울릴 것까지야.



아이 엄마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다가 떠올린 선친. 사춘기에 나도 “냄냄.”이었지. 귀찮은 잔소리로만 여겨 굳이 청개구리가 되곤 했으니까. 카투사 복무시절 미군 룸메이트도 그랬지. 한국말 발음을 교정시킨다며 정색하고 다투던 미군 친구. 다 하릴없는 고집뿐인 것을. “냄냄.” 헐레벌떡 들어선 친구에게 장난삼아 건넨 인사말. 오랜만의 대면인데 좀 심했나?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09-06-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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