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생쥐텍페리/김성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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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5-14 00:44
입력 2009-05-14 00:00
세뇌(洗腦). ‘의식을 바꾸거나 사상, 주의를 뇌리에 주입하는 일’. 사전 의미보다 본뜻이 훨씬 험악한 말이다. 뇌를 씻어낸다니. 통용되는 뉘앙스보다 더 무서운 본뜻을 가진 말에 놀랄 때가 많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말들도 숱하게 분재를 했을 터이다.

동네 단골 책방에선 세뇌, 아니 뇌를 씻기기 일쑤다. 고집쟁이 주인 때문이다. 분명 내가 맞는데 억지를 부린다. 자발적 굴욕을 참고 책방을 다시 찾는 건 순전히 알량한 책값 좀 깎기 위해서다. 어제 책방에선 고집쟁이 주인이 아니라 고집쟁이 손님에게 뇌 씻김을 당했다. “생쥐텍페리의 어린왕자 주세요.”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세상이 급박하게 돌다 보니 이름도 바뀌는구나. 아니 인터넷 이름은 그렇게 쓰나? 옆에 섰던 또래의 친구도 책을 주문한다. “저도 생쥐텍페리 어린왕자 주세요.” 혼란스럽다.



책을 골라들고 집에 들어가 TV를 켜자 생텍쥐페리가 눈에 든다. 무슨 다큐멘터리였는데…. 순간 입에서 터져 나온 외마디에 식구들의 시선이 와락 쏠린다. “어 생쥐텍페리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09-05-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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