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학력평가 서열화 보도 자제해야/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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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2-24 00:04
입력 2009-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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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지난 한 주 동안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자신과 주위를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는 전국적 추모의 물결 속에서 ‘죽음으로써 가르침’을 내리는 지도자의 진면목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는 ‘바보’의 사랑과 나눔의 실천이 주는 잔잔하지만 거대한 감동을 경험했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이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사정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듯 서울신문은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경건하면서도 매우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한 주, 김 추기경의 영면 소식에 파묻혀 넘어가기엔 너무나 그 파장이 큰, 많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다.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으로 용산참사가 새로 도마에 오르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판교 터파기 공사장 붕괴로 아까운 생목숨을 잃는 사고가 터졌다. 환율 급등에 금융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고, 북한 미사일 발사 조짐으로 정세 긴장이 더했으며, 개발시대에나 있음 직한 고속철 부실공사 소식에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이 모두 오만과 독선, 그리고 무책임과 과욕이 빚어낸 인재(人災)이자 갈등이고 보면, 새삼 고 김 추기경의 가르침에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처럼 일들이야 많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의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둘러싼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언론이 좀 더 분석적이고 치밀한 관점으로 이 사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속적이고 비판적인 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여느 언론도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우선 서울신문은 관련 소식을 “임실 ‘공교육의 힘’”이라는 1면 머리기사(2월17일자)로 내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큰 오보를 내고 말았다. 원래 부실했던 교과부의 평가 관리 방식과 오류투성이 발표 자료에 근거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만큼 결과적인 오보였을 뿐 신문의 책임은 미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제작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교과부의 보도 자료를 주는 그대로 받아 적은 이른바 ‘발표 저널리즘’의 관행적 폐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아닐까. 임실교육청의 담당자도 처음엔 ‘보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자료를 취합하다 보니 일어난 실수’였다고 변명하지 않았던가.

사실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는 시작부터 반대 여론도 만만찮았고, 최초의 전수조사 결과 발표라는 점에서 예상 파급력 때문에 사회적 관심도 매우 컸던 문제였다. 그런 만큼 처음부터 교과부의 발표 과정에 대해 더욱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번 평가결과 공개의 주된 목적을 어디에 두고 조사결과를 보도했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고려해 보자.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 때문에 교과부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기초학력 미달이나 지역·계층 간 격차 해소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자료 수집이 학력평가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교과부 발표 바로 뒤인 서울신문의 2월17일자 관련 보도(4∼5면)는 오히려 서열화를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사안을 다루는 것 같은 인상이 짙다. 제목부터 어디가 1위인지 강조하고, 상위권부터 ‘전국 꼴찌’까지 세세하게 알리는 평가결과표와 내용이 지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 신뢰도라는 문제로 불똥이 튀어버려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지만, 앞으로 관련 보도는 좀 더 부지런한 별도 취재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이나 지역·계층간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와 그 패턴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는 분석적 기사를 실어주길 바란다.

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2009-02-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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