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상처의 기원/소설가 구효서
수정 2009-02-05 01:52
입력 2009-02-05 00:00
소설을 흔히 갈등구조라고 한다. 갈등 내용 없이 소설이라는 구조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한 만큼 소설은 대개 슬픔·상처·아픔·번민 따위를 안고 시작한다. 소설 쓰기는 그러한 갈등의 원인, 즉 ‘상처의 기원’이 무엇에서 비롯되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는 순간 갈등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해소는 물론이고 갈등의 설정까지 작가의 몫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성 지망생의 경우 ‘상처의 기원’을 남성에게 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남성의 부재가 슬픔과 번민의 기원이 된다. 가장이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면서 일가족의 불행이 시작되며, 그 불행은 현재로 이어져 일상생활의 소소한 갈등으로 지속된다. 좌우대결에서 희생되거나, 전장에서 전사하거나, 납북된 가장으로 인해 남은 여성과 가족들은 사회적 차별과 가난을 대물림한다.
남은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늙도록 기다리는 여성의 이중고는, 무심한 세월의 혹독한 외로움을 견뎌내는 인고의 아름다움으로 미화되거나, 민족사의 비극으로 환기되거나, 실존적 비장미마저 자극하며 감동을 유발한다.
그런가 하면 도박과 음주를 일삼는 무책임한 아버지에 의해, 외도와 폭행을 자행하는 부도덕한 남편에 의해, 혹은 비행과 탈선으로 속 썩이는 아들에 의해 소설 속 많은 여주인공들이 상처를 입는다.
놀랍다. 우리 사회의 남성들, 지탄받아 마땅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남성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인식하는 습관은 분명 우려스럽다. 여성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 또한 남성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여성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남성상이래 봤자 그 역시 ‘남성’이기 때문이다.
남성을 사회나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본다면 우려스러움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걸 국가 탓으로 돌리거나 모든 걸 국가가 잘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는 국가 의존적 국민이라면, 국가라는 창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저 끔찍한 국가사회주의적 근시안에 갇히게 될 것이다.
‘상처의 기원’은 어쩌면 남성이나 국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조건적 의존이 이미 무의미해진 시대임에도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이 우리의 갈등을 지연시키는 건 아닌지. 더 나은 남성, 더 나은 국가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의 ‘기대’ 자체를 자문하고 반성해 볼 때이다.
소설가 구효서
2009-02-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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