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내가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수정 2008-09-08 00:00
입력 2008-09-08 00:00
우리의 88올림픽이 그랬듯 특정기간 동안 사회적 에너지가 과다하게 투입된 어젠다는 온갖 시대의 부조리를 낳기 마련이다. 올림픽으로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진 위용을 뽐낸 베이징의 이면에도 분명 소외층의 희생과 가슴 아픈 사연들이 감춰져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도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자신감, 그 거대한 긍정 에너지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가히 세기의 퍼포먼스로 불릴 만했던 이번 올림픽 개막식 공연도 빼놓을 수 없다. 장이머우라는 걸출한 중국감독의 영화적 상상력과 만난 중국의 눈부신 문화유산은 매혹적이었다. 동시에 세계를 향해 중국의 부상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듯한 자기중심적인 메시지는 섬뜩할 정도였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우월감은 위험한 것이다. 세계는 이번 개막식에서 그러한 우월감을 읽었을 터였고, 그 우월감이 자신이 아닌 남의 것일 때 경계와 비판의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그 공연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영화나 책보다도 내게 동양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새롭게 환기시켰다.
1980년대 초 ‘이머징 마켓’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신흥시장 투자전문가 앙투안 반 아그마엘은 그의 책 ‘이머징 마켓의 시대’에서 이제 지구의 중심축은 서구에서 중국, 인도, 한국, 멕시코, 브라질, 러시아 같은 신흥시장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처럼 최근 기라성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고위 임원들이 거처를 기존의 뉴욕이나 런던에서 아시아 도시로 옮기는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아시아 시장의 기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노력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뉴욕 월가 중역들 사이에서는 자녀들에게 중국어 과외를 시키는 게 유행이고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는 딸이 중국어를 배울 수 있게 아예 아시아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언론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우리가 영어학습을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생각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아메리칸 스탠더드와 혼동하며, 글로벌화를 서구화로 착각할 때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가진 이들은 이렇게 앞다퉈 아시아의 저력과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마인드란 타 문화에 대한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태도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인, 나아가 동양인으로서의 건강한 자의식을 가지는 동시에 서양문화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 아시아의 문화,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 아시아 이웃들과의 교류와 협력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우선 가까운 이웃나라들부터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탄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절호의 기회이자 우리만의 장점으로 생각하는 긍정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이번 베이징여행을 마치고 난 난생 처음으로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은행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2008-09-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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