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서울광장의 ‘이명준’/이동구 사회부 차장
수정 2008-06-11 00:00
입력 2008-06-11 00:00
시작은 미국산 쇠고기라는 먹거리에 불안해하는 학생, 시민들의 자발적인 표현이었다. 문화제란 이름으로 한달 전쯤 몇몇이 밝혔던 촛불은 며칠새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됐고 촛불과 함께 함성 소리도 높아졌다. 문화제를 밝히던 촛불은 어느새 거리를 뒤덮고 시민을 움직이는 큰 횃불이 돼 현 정부의 정책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이번 촛불집회는 거시적이기보다는 미시적인 생활정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사회운동의 주요 이슈가 민주화, 노사관계 등 거시적 제도에 있었다면, 이번 이슈는 먹거리 안전에 연관된 일상 생활과 관련된 것이라는 얘기다. 환경·생명·평화 등에 시민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원인이라는 분석도 했다.
촛불집회의 초기 분위기는 그랬다. 집회가 20여회 될 때까지는 중·고교생 등 학생들의 참여가 많았고 점차 도심의 직장인, 아이와 함께한 주부들로 번져 나갔다. 정치적인 구호보다는 “먹거리의 안전을 확보해 달라.”는 우려감을 표현하고 싶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주류를 이뤘다. 언론들도 시민들의 이 같은 순수성으로 촛불문화제(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전했고 시민의 호응은 날로 높아져 갔다. 촛불을 든다는 것은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는 의식의 일종으로 통한다. 함성이나 과격한 행동보다 더 호소력을 지닌다. 서울광장의 촛불도 그래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관건은 ‘순수성의 유지’에 있다. 촛불이 지니는 상징성을 믿고 끝까지 평화적인 불빛이 되어준다면 촛불을 든 시민들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점차 촛불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행동들이 여기저기서 돌출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72시간 연속집회를 기점으로 쇠파이프, 삽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달여간 이어져온 촛불 시위가 전환점을 맞고 있는 듯하다. 국민대책회의는 과격행동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도 “폭력의 정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불법과 폭력적인 방법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0만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이 촛불집회에 총회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원 등도 파업 및 집회 참여를 선언했다. 쇠고기로 시작된 촛불이 노동문제, 나아가 복합적인 정치적 이슈로 옮겨져 가는 양상이다.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뉴라이트국민연합 등 보수단체들도 3000여명(경찰추산)이 ‘법질서 수호 및 FTA비준 촉구를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서울광장은 갈등의 골을 깊게 드러낸 장소였다. 늦은 감이 들지만 정부내에서도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일괄사표 등 책임론과 함께 촛불을 잠재우기 위한 해결책 논의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나 촛불시민 모두가 서울광장의 ‘이명준’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이동구 사회부 차장 yidonggu@seoul.co.kr
2008-06-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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