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중국식 지도자 검증이 부러운 이유/이석우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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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3-28 00:00
입력 2008-03-28 00:00
중국내 티베트(시짱·西藏) 독립 요구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지던 지난 16일 베이징에선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2기가 공식적으로 돛을 올렸다.‘중화인민공화국 주식회사’의 회장격인 국가주석에 후진타오가,‘총괄 사장’인 총리에 원자바오(溫家寶)가 재신임되면서 다시 5년동안 ‘중국 호(號)’의 조타수가 됐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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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국제부장
이석우 국제부장


시진핑(習近平)과 리커창(李克强), 차세대 양대 축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놓쳐선 안될 ‘사건’이었다. 쉰다섯의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에 선출돼 차기 국가주석 영순위 후보가 됐고 쉰셋으로 상무 부총리에 뽑힌 리커창은 차기 총리를 준비하게 됐다. 앞서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10월말 기업의 등기이사 격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4명을 물갈이, 최고정책기구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이로써 후-원 체제가 막을 내릴 2012년 이후 차기 집권 구도의 포석을 공식화한 셈이다.

후진타오나 그에 앞선 3세대 집단지도체제 핵심 장쩌민(江澤民) 등은 모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낙점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장이나 후로 상징되는 3·4세대 지도자들은 덩의 낙점만으로 정상에 오르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경쟁과 검증을 거치며, 실적과 성취로 존재를 입증해 온 그런 사람들이다. 장쩌민이 비누공장 등을 거치며 일찍부터 수완을 과시하며 두각을 나타낸 것이나 후진타오가 편벽한 깐수(甘肅)성 현장에서 실적을 이뤄낸 것도 마찬가지 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독단과 후계구도 불안정의 악영향을 몸소 겪고 느꼈던 덩 등 2세대 지도자들은 후계구도의 안정성에 대해 정책적 우선 순위를 두고 접근했다. 그 고민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검증과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일 때만 인사구도의 안정성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일당 독재의 한계속에서도 그런 모습을 그려내려는 안간힘으로 이어져 왔다. 덩샤오핑은 1980년대 중·후반 과감하게 20·30대들을 간부로 기용했다.90년대 중반엔 검증과 실적 싸움에서 살아남은 일부가 중앙의 중견 간부나 중·소도시 시장, 당서기들로 자리잡으며 중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내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과정에서 나이, 계파, 당에 대한 충성도 및 대중 지도력 등이 고려됐지만 실적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졌다.‘사원 주주’ 공산당원 사이에서지만 공감과 수긍은 확산됐고 엘리트의 건강한 충원과 자칫 깨지기 쉬운 집단지도체제의 유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는 평도 얻었다.

엊그제 입후보 등록이 마감되면서 18대 국회의원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지만 공천을 둘러싼 정당성 시비는 잦아들기는커녕 확산일로에 있다. 공천 시비로 인한 분란으로 선거 판세가 달라지고 선거후 분당 등 거센 후폭풍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일당(一黨)의 국가’ 중국의 지도자 충원 방식을 감히 민주국가 한국의 선거와 비교하는 일은 불경스럽고 불손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요사이 선거판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중국의 검증과 합의 수준에 부러움과 유혹을 느낄 정도다. 앞선 ‘실용정부´ 초대 각료 인사 검증도 한숨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몇 사람의 지도자가 바뀌면 당이 생겼다 없어지는 한국적인 ‘하루살이 정당체제’에서 요즘 같은 공천 파동과 시비가 잦아들 것 같지도 않다. 인물과 정책 검증이 시원찮은 상황에선 한바탕의 흥행을 위한 바람몰이만이 성공의 지름길인 까닭에서일까. 원칙과 대화가 소통되지 못하는 곳에선 상황논리와 임기응변만이 활개칠 따름이다. 신진대사가 이뤄지듯 변신해 나가는 중국 지도부의 진화에 유혹마저 느끼는 ‘황당한 상황’속에서 피를 흘리며 쌓아올린 우리 민주화의 성취가 선거를 거칠 때마다 무색해질까 두렵다.

이석우 국제부장 swlee@seoul.co.kr
2008-03-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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