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아빠의 마음/육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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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철수 기자
수정 2008-02-21 00:00
입력 2008-02-21 00:00
지방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친구 L을 근 10년만에 만났다. 화제는 자연스레 아이들 대학입학 문제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친구, 그때부터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술잔을 거푸 비우더니 속내를 털어놓았다.

L의 큰딸은 지난해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그래서 유명학원이 즐비한 서울 강남에 전세를 얻어 딸과 아내를 보내 재수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도 시원찮았다고 한다. 건강까지 나빠져 성적이 지난해만도 못했단다. 어느날 딸이 “아빠, 미안해!”하며 눈물을 글썽이더란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L은 “뭐가 미안한데?”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하곤 등을 돌렸다고 한다.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야, 이 사람아! 대학 좀 늦는 게 무슨 대수야? 따뜻하게 안아주지 그랬어.”라며 핀잔을 주었다. 친구는 그제야 휴대전화를 주섬주섬 꺼내 딸을 연결했다.“미안하구나, 아빠가 옹졸했어. 그래, 힘내서 다시 시작하자….”



전화기 저쪽에서 딸의 풀죽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식의 입시가 부모의 성적이나 자존심은 아닐진대, 나도 비슷한 처지라 남의 일 같지 않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8-02-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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