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납북 친구 이재환/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수정 2007-12-07 00:00
입력 2007-12-07 00:00
80년대 북의 납치는 유럽으로 확대된다. 제3국이라 납치가 쉽고 동구권쪽으로 쉽게 빼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모토 게이코(당시 23세)는 83년 유럽에서 유인돼 북한에 간 사례다. 아리모토는 역시 유럽에서 납치돼 북으로 온 남성과 결혼했으나 88년 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사망했다고 일본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에 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측 통고를 받은 바 있다.
미국 MIT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이재환(당시 25세). 고교 1학년때 필자와 같은 반이었던 그는 세차례 충격적인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한다.87년 7월.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중이었을 그가 ‘의거 입북’했다고 북한 당국이 밝혔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치라고 직감했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검 차장을 지낸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조인을 지망했으나 서울대 영문과를 중퇴하고는 길을 바꿔 경영학 교수를 꿈꾼 그와 북한을 연결시키는 일은 불가능했다.99년. 국정원은 그가 탈북을 시도하다 잡혀 정치범수용소에 있다고 발표한다. 가족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그리던 2001년. 북측은 적십자사를 통해 그의 사망을 통보하기에 이른다.
38세에 생을 마감한 이재환의 북녘 생활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낯선 땅에서 남녘 가족을 그렸을 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고교 2,3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가수 이광필이 ‘납북된 나의 친구 이재환 사망날짜, 유해를 송환하라’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세상을 뜬 그의 죽음에 애끓는 가족들에게는 제사를 지낼 기일과 고향땅에 묻을 유해가 간절할 것이다.1000여 납북자·국군포로의 생환과 함께 네번째가 될 그의 마지막 소식을 기다린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07-12-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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