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을, 멋 그리고 편지/정경원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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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11-12 00:00
입력 2007-11-12 00:00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이 육신을 타고나 그대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그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운명, 우리 둘은 이처럼 하나이며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위의 세 문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편지다. 가슴을 담아낸 편지글이다.

전장(戰場)에서 만난 적장에게는 경고문이며, 영혼의 연인에게는 러브레터가 된다. 또 사랑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하는 이에는 가슴 저미는 사랑이 된다. 바로 구구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몇 줄의 편지가 수십만 군대를 물리치게도 하고 또 사랑하는 연인에겐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도 하는 것이다.

첫번째는 저 옛날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이 살수까지 추격해온 수나라의 수장 우중문(于仲文)을 희롱해 보낸 시다. 이 편지 한 통으로 고구려는 살수대첩에서 대승을 거뒀다. 두 번째 편지는 레바논 출신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칼릴 지브란(1883∼1931)이 영혼의 연인 메리 헤스켈에 보낸 편지의 일부다. 세번째는 청마 유치환(1908∼1967)이 오랜 세월동안 시조시인인 이영도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주고받은 연서의 하나인 ‘행복’이란 시다.

이들 세 문장은 편지라는 유사점 외에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먹물(또는 펜)을 이용해 글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이메일이나 디지털 편지가 없었기에 부득이한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마음을 건네는 데 먹물로 쓴 편지만한 게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즈음과 같은 디지털시대에 사실, 편지는 형식에 얽매인 서신으로 곧잘 치부된다. 정보기술(IT) 발달과 함께 편지가 급격하게 준 것이 이를 잘 대변한다.48억통의 우편물량 중에 10%도 안 된다고 한다. 요즘 시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말만이 아닌,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한다. 보다 형식적인 내용의 말이라면 이메일을 이용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그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느낀다.

디지털 시대에 먹물로 쓴 편지는 쓰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절절하게 전달할 수 있다. 먹물로 쓴 편지에는 남다른 매력이 있다. 쓰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절절하게 하는 그런 마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먹물로 쓴 편지에는 보내는 사람의 애틋한 감정을 더 깊고 넓게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자 한 자씩 써 내려갈 때 쓰는 사람의 분위기와 가슴과 마음마저 담을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마음을 그리는 그림이나 노랗게 물든 은행잎 한 장으로 더 큰 마음을 실어 보낼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편지이다.



부모님이나 스승 또는 연인, 그리고 지인 아니면 아내나 남편, 아이들에게 보내면 어떨까. 이 가을에 누군가에게 참마음을 담아 전하는 편지를 쓰는 멋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펜을 잡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아니한가.

정경원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장
2007-11-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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