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신문 저널리즘 원칙 지켜야/최홍운 한국언론재단 기금이사
수정 2007-09-21 00:00
입력 2007-09-21 00:00
한국언론재단이 지난 18일 긴급히 마련한 ‘신정아 사건과 언론보도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가 적나라하게 지적됐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신정아씨가 허위 학력으로 교수가 되고 국제비엔날레 총감독이 됐다는 내용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이후 급기야 ‘누드사진’ 보도에까지 이르면서 ‘떼거리 저널리즘’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대체로 신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보도 태도에 있어서는 대부분 신정아씨 사생활이나 인격권 등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는 낙인찍힌 여자’나 심지어 ‘죄인’으로 착각하게 하는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는 비판이다.
이미 한국 신문은 최근 몇 년 사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지난 1984년부터 2년을 주기로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를 실시해 오고 있는 한국언론재단 통계를 보면,1986년 집에서 구독하는 정기 구독률이 71.6%였으나 1996년 69.3%로 떨어진 데 이어 2002년 52.9%,2004년 48.3%로 절반 이하로 줄더니 급기야 2006년에는 40.0%로 뚝 떨어졌다. 이같은 구독률 하락은 신문의 신뢰도 하락과 정비례한다.
1980년대 50% 이상의 수용자들이 신문을 가장 믿을 만한 매체로 꼽았으나 1998년 이후에는 신뢰도의 하락폭이 커 1위 자리를 TV에 빼앗겼고,2006년에는 18.5%로 TV의 66.6%에 크게 뒤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이 부각된 2004년에는 인터넷에 이어 3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오는 2020년에는 구독률 제로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신문의 위기는 우리나라만 겪는 고통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위기에 처했어도 다른 선진국들은 언론의 정도를 잃지 않고 변화에 순응하면서 끊임없이 독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신뢰도를 높여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만 해도 신문 89.5%, 방송 65.2%(2006년 10월 요미우리신문 조사)로 신문의 신뢰도가 훨씬 높다. 신문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지역신문 언론인 15명과 함께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주립대학과 엘런대학, 벌링턴타임스, 워싱턴데일리, 알라만스, 웨이크, 아우트 방스 센티널신문사를 찾았을 때도 이를 확인했다. 미국 역시 지난해 1만 7809명의 신문 종사자들이 실직했고,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4391명(미국신문협회 집계)이 신문사를 떠날 정도로 위기 상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 신문들은 편집권의 확실한 독립과 철저한 독자의 시각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었다. 시간당 초임 10달러 정도의 저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사명을 기꺼이 수행하는 언론인들은 지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같은 원칙과 정도를 지키고 있는 방문 신문사들은 놀랍게도 모두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 신문들이 ‘진실 보도=신뢰 회복=경영 안정’이라는 대원칙을 자기 생존을 위해서라도 실천하길 기대해 본다.
최홍운 한국언론재단 기금이사
2007-09-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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