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준법투쟁/이목희 논설위원
이목희 기자
수정 2007-06-21 00:00
입력 2007-06-21 00:00
정치권의 준법투쟁으로는 필리버스터가 있다. 저지해야 할 안건이 국회에 상정되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지연작전이 펼쳐진다. 발언권을 계속 얻어 시간을 끌고, 단상으로 가는 발걸음 하나에 몇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근로자의 준법투쟁이나 국회의원의 필리버스터가 가끔은 예쁘게 비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 소수파로서 옳은 뜻을 호소할 길 없을 때 유용한 수단이다. 폭력과 자해 등 과격투쟁보다 낫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종의 준법투쟁을 선언했다. 정치 언행을 놓고 선관위가 잇따라 위법판정을 내리자 발언 전에 일일이 물어보겠다고 밝혔다. 불쾌함의 역설적 표현일 것이다. 노 대통령이 변호사이고 청와대에 법률자문팀이 있는데 상식선에서 판단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대통령이 선관위를 괴롭혀 득을 볼 만큼 약한 자리인가 돌아봐야 한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는 대통령을 ‘나라의 왕’으로 지칭했다. 안씨 논리에 동감하진 않지만 선출직 대통령은 사용자, 임명직 선관위원은 근로자로 보는 듯싶다. 근로자를 향한 사용자의 준법투쟁은 앞뒤가 안 맞는다. 청와대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는 것 역시 거꾸로 된 준법투쟁의 하나다. 최고지도자가 명분 약한 투쟁에 나서는 행위 자체가 국민에게는 걱정이다.
준법투쟁의 성격이 아니라면 선거법위반 여부를 선관위에 물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화·인터넷 문의는 하루 수백건씩 온다고 한다. 민감한 사안은 서면질의를 하면 내부 논의를 거쳐 답변해 준다. 대선주자 캠프, 정부기관, 지자체, 언론기관이 애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정치발언이 다소 늦춰진다고 해서 국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선관위에 충분한 자문을 구한 후 해도 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7-06-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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