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에스컬레이터 한 줄 타기’ 역기능 많다/유대운 한국승강기 안전관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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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5-28 00:00
입력 2007-05-28 00:00
많은 에스컬레이터 이용자들이 한쪽(왼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지금의 에스컬레이터 이용문화는 기계고장과 안전사고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한줄타기문화는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움직이는 승강기에서 걷거나 뛰는 행동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한줄타기문화가 다른 편에 선 이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용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움직이는 기계장치에서 걷거나, 뛰거나, 장난치는 등의 행동이 곧바로 기계고장이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시민단체 등에선 지하철이나 백화점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할 때 왼쪽을 비워두는 것이 남을 배려하는 에티켓이라고 적극 홍보했고, 이후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가 하나의 문화로 굳어졌다. 오히려 왼쪽에 가만히 서 있으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비켜줄 것을 요구하거나, 눈치를 주는 게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동안 발생한 국내 승강기 안전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사고 214건 중 35.5%인 76건이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로 조사됐고, 이중 65.7%는 에스컬레이터 이용이 많은 지하철 역사에서 발생했다.

특히 지하철에서 발생한 76건의 사고 가운데 걷거나 뛰는 등의 행동으로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32건을 차지해 가장 높았다. 대부분이 ‘이용자 과실’로 인한 것인데 현재 이용문화로 고착화된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가 이런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웃 일본의 신주쿠에서는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 올라가던 한 여성이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의 허리를 치며 올라가는 바람에 그 남자가 에스컬레이터 몸체에 부딪쳐 심하게 다치는 안전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 명이 다친 사고에 불과했지만 신주쿠 시민들은 재발을 막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가 얼마 전 발생했다.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지 않고 이동하던 60,70대 노인 일행이 뒤로 밀려 넘어졌고 뒤따르던 노인 7∼8명이 한꺼번에 연쇄적으로 쓰러졌다. 당시 이용자 중 대부분이 왼쪽에서 위로 이동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보다 왼쪽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안전사고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는 방증이다.

김찬웅 중앙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2004년 5월부터 2006년 6월까지 한 지역 종합병원을 찾은 에스컬레이터 손상환자를 조사한 결과 65세 이상 노인의 비중이 65세 미만 노인의 비중보다 높게 나타났고, 전체의 78%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손잡이(핸드레일)를 잡지 않아 발생한 사고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령자의 경우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탑승시 일반인에 비해 균형감각을 잃기 쉽다는 것이 김교수의 분석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 발생 원인의 33.7%가 ‘손잡이를 잡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지금의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 문화가 개선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잘못된 에스컬레이터 이용문화를 고쳐야 할 시점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기초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은 가만히 서있는 사람이 아니라,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며 이들이야말로 다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예절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대운 한국승강기 안전관리원장
2007-05-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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