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선창/최태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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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5-11 00:00
입력 2007-05-11 00:00
젊은 시절 산사에 잠시 머물렀다. 어느날 식구 하나가 늘었다. 짐이라곤 빛바랜 책 몇 권과 옷가지 몇 점이 전부였다. 소설 쓰는 친구였다. 그는 속세가 편했던 모양이다.10여분 지척에 민가가 있었다. 늘 술과 함께 했다. 막걸리, 소주 가리지 않았다.

주지 스님이 불렀다.“김군아, 술이 과하다. 몸 버릴라. 공양시간 지켜라.” 제때 식사하라는 당부였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큰 스님, 술은 괜찮은데, 밥 많이 먹으면 혈압이 오르거든요.” 원고 마감땐 두문불출이었다. 며칠씩 틀어박혔다. 비로소 주식이 술에서 누룽지로 바뀌었다.



비슷한 또래였다. 그는 러시아 문학을 즐겼다. 취중에 누군가가 물었다. “돈 안되는 글 왜 쓰느냐.”고. 그러면 “당신이 문학을 아느냐.”며 침을 튀겼다. 겨울 아침 종종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연탄불이 꺼져, 햇볕에 몸을 녹인다고 했다. 엉뚱하고, 순진한 청년이었다. 부산 친구여서인지,‘선창’을 즐겨 불렀다.‘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맺힌 백일홍’ 대구(對句)가 처연하다. 그에겐 지금도 술이 삶의 원천일까.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2007-05-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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