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EU 50돌/이목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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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기자
수정 2007-03-24 00:00
입력 2007-03-24 00:00
유럽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인간이 재능을 발휘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나은 통치단위로 민족국가 개념을 지구촌에 퍼뜨린 게 유럽이다. 그래놓고 자기들은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민족국가 체제의 단점을 이미 겪고 한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남북통일이라는 민족공동체조차 못 이루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8세기말 프랑스혁명 이래 유럽 강대국들은 제국주의 야욕을 채우는 도구로서 민족국가를 내세웠다. 철학자 헤겔에게 국가는 절대선(善)이었다. 민족국가의 이름으로 하는 행동은 잘못이 없었으므로 국가간의 분쟁은 전쟁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민족주의는 강대국들이 힘빠진 합스부르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나눠먹는 데 활용되었다. 또 히틀러 침략의 사상적 배경이 되면서 세계대전의 참화를 가져왔다.

내일은 유럽연합(EU) 출범의 모태가 된 로마조약이 체결된 지 50주년 되는 날이다. 곡절은 있었으나 로마제국과 중세 기독교 봉건사회 이래 유럽이 이처럼 뭉친 적은 없었다. 일각에서 유로스켑티시즘(유럽회의론)이 일고, 유럽헌법이 부결되기도 했지만 1,2차 대전의 뼈아픈 경험은 EU의 꾸준한 진전을 밀어주는 원동력이다. 정치·문화적 통합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한걸음씩 나가는 모습에서 유럽의 저력이 느껴진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EU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50개나 들었다. 공동번영, 민주주의 정착, 복지확대 등.“늙은 대륙 유럽을 활기차게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앞으로 미국, 중국 등 거대국가 사이에서 유럽이 하나의 균형추 역할을 하려면 뭉치는 수밖에 없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엊그제 동북아에서 EU 못지않은 지역공동체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북핵 협상의 진전을 보아가며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 정상이 모여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시작을 선언하자는 것이다. 이어 경제공동체 단계로 나아가자고 했다. 아직은 꿈같은 얘기이지만 실현되지 말란 법도 없다. 유럽이 몇백년 걸려 이룩한 민주사회를 몇십년 만에 일궈낸 저력을 다시 발휘한다면 말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7-03-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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