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광주,소프트웨어를 먼저 만들어라/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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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7-03-20 00:00
입력 2007-03-20 00:00
이른바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이하 문화중심도시)사업’이 비틀거리다 못해 갈팡질팡하는 형국이다. 안개바다에 표류하는 선박과도 같은 모습이어서 난감한 느낌만 안겨줄 뿐이다.

대통령령으로 출범한 지 3년을 넘어서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이 사업의 방향이랄까 컨셉트와 목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5·18항쟁의 현장인 옛 전남도청 건물을 중심으로 그려졌다는 설계도면은 어느새 반쪽이 돼 버렸고 새로운 설계를 위한 ‘랜드마크’라는 말이 지역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문화중심도시 사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직은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다.

사업의 프로젝트라는 것이 아직까지도 전 시민적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여 산 위의 구름처럼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상태인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문화종사자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랄까 중구난방식 발언들만이 새된 스피커소리처럼 새어나오고 있을 뿐 실재로 사업 컨셉트를 리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청와대(대통령 직속 조성위원회), 문화관광부, 광주광역시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광주문화중심도시 조성에 미래지향적 대안을 확실하게 갖고 있는지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민들이 지금까지 느끼는 바로는 문화중심도시 사업이 이렇듯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관장부서인 문화관광부와 관할지역 당사자인 광주광역시가 서로 엇박자를 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서로의 세(勢)를 놓지 않으려는 ‘기(氣)싸움’에 매달리다 보니 중앙부서와 지방부서 간에 미묘한 알력과 파열음이 생기고, 사업에 일관성(일원화)이 없어지고 이원화·삼원화되는 파행으로 치달은 나머지 오늘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광주시민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문광부와 광주광역시가 호흡을 같이하지 못하고 또 여기에다 대통령 직속으로 편재된 조성위원회(‘자문위원회’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점을 유발시킨다.)가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서 갖가지 불협화음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문광부와 광주광역시, 조성위원회가 서로를 존중하려는 대승적 자세에서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앞으로의 문화중심도시에 대하여 깊은 고뇌와 애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다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역할분담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변에서 현장기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문화중심도시 사업에는 ‘광주’가 내놓을 컨셉트가 담겨있지 않습니다.”“추진기획단이 만든 두꺼운 책을 아무리 뒤져도 문화중심도시의 핵심, 소프트웨어가 안 보입니다.”“우뚝 솟은 랜드마크도 중요하지만 ‘민주·평화·통일’을 상징하고 또 그것을 보편적인 한국문화와 세계문화로 발흥시켜 나가는 소프트웨어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것이 거대한 문화의 전당을 짓는 하드웨어사업보다도 더 우선적이고 시급한 일이 아닐까요?”

현장기자들도 이런 뜻에서 말했을 것이다. 옛 전남도청에 들어설 아시아문화의 전당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1980년 5월의 ‘Free Gwangju’(자유광주)’를 소프트웨어로 담아 넣을 때 명실공히 문화중심도시로서의 생명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민족운동사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 민족 전체구성원들의 고통과 줄기찬 희망 속에서 창출된 역사야말로 사실은 최고의 문화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2007-03-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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