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산에 라디오는 왜 갖고 갈까/성석제 소설가
수정 2007-01-27 00:00
입력 2007-01-27 00:00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산에서 들리는 라디오의 음향을 아주 못 견뎌 했다. 그래서 자신은 라디오를 켜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가서 “미안하지만 그것 좀 꺼주세요.” 하고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러면 대개의 경우 라디오를 끄긴 하지만 또 대개의 경우 서로 안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되면 다시 켠다는 것이다.
어느날 집 근처에 있는 해발 500m 남짓한 산을 올라가는데 제대로 등산복을 갖춰 입고 배낭까지 멘 늠름한 사나이가 역시 늠름한 모양의 초대형 카세트를 오른쪽 어깨 위에 메고 오는 것이었다. 사나이는 중턱에서 이미 작은 생수병을 다 비우고 숨을 헐떡거리는 나를 가련하다는 듯 힐끗 보고는 배낭에서 2ℓ짜리 생수병을 꺼내 소리도 늠름하게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고는 카세트의 볼륨을 몇 단 더 높이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렁차게 산곡간에 울려퍼지는 ‘아아싸’ 하는 추임새가 들어 있는 빠른 노래소리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능력껏 쉬엄쉬엄 가다 전체 도정의 3분의2쯤 되는 곳에서 앉아 있으려니 다시 노랫소리가 낭자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 사나이가 정상 쪽에서 내려왔고 부채질을 하고 있는 내 앞에서 그 고래 덩치의 물병을 꺼내 소리도 요란하게 마시고는 ‘카아’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바로 이 맛에 산을 온다는 듯이. 나는 공감할 수도 물 좀 나눠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어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사나이는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훑어보고는 카세트를 어깨에 메었다. 끙끙거리고 올라가는 내 귀에 아래로 향해 가는 카세트에서 나오는 노래가 오래도록 따라왔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왜 그 사나이가 그렇게 큰 카세트를 들고 다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외로운 것이었다. 노래에 어깨춤을 추고 뉴스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스스로가 산에 왔고 힘 세고 빠르다는 것을 사람이 드문 평일의 산행에서도 과시하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큰 물통이며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복장이며 늠름한 모습은 누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라고 한 공자 말씀이 떠오르게 하는 경우였다.
그 다음 선배와 함께 한 산행에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선배는 젊은 시절, 캠핑을 하면서 카세트 라디오를 켜놓았던 경우를 들며 “무서워서 그랬다.”고 고백했다. 텐트 바깥의 곰이, 여우가, 곰과 여우 같은 존재들이 무서워서 밤새 라디오를 튼 채 텐트 안에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는 산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라디오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알고 보면 그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이다. 불안해서 라디오며 노랫소리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러니 중국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가 ‘비파행’에서 노래한 대로 ‘우리 모두 다 천애에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일찌감치 만나서 알게 되었는가’의 경지에 함께 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미움, 얄미움 대신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가슴에 들어찼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안다면 늠름한 그 사나이, 분명히 카세트를 집에 두고 올 것이다.
성석제 소설가
2007-01-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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