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힐러리와 라이스/황성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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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기 기자
수정 2007-01-23 00:00
입력 2007-01-23 00:00
힐러리 클린턴과 콘돌리자 라이스.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외교책임자로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의 정점에 선 여성이다. 민주당 후보군 중 최고의 지지율을 업고 출마를 선언한 힐러리 상원의원. 불출마 표명에도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여전히 거론되는 라이스 국무장관. 머리 좋고 힘 넘치는 여걸이라는 공통점보다는 인종, 정치성향을 비롯해 다른 점이 더 많다.

라이스가 일직선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면 힐러리는 지그재그 인생이었다. 라이스는 초등학생부터 월반을 거듭해 열아홉에 덴버 대학을 졸업하고 26살에 스탠퍼드대 조교수가 된다.34세에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들어갔다가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거쳐 46세에 아들 부시 1기 행정부의 안보보좌관으로,50세엔 흑인으론 첫 여성 국무장관의 자리에 오른다. 반면 지방의 공립고교를 거쳐 웨슬리여대를 졸업한 힐러리는 예일 법대에서 만난 빌 클린턴의 졸업에 맞춰 1년반을 기다릴 만큼 출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인기 로펌에 취업한 동급생과 달리 아동보호기금에서 일하던 그녀는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클린턴이 있는 시골 아칸소로 향한다. 지사 부인으로, 대통령 부인으로 내조하다 상원 의원으로 자립한 게 53세였다.

조직원으로 내공을 쌓아온 라이스와는 달리 힐러리는 아칸소의 법률사무소를 빼놓으면 조직과 거리가 멀다. 튀는 행동으로 입방아에 자주 올랐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추진했다가 실패한 의료보험개혁이 좋은 예다. 라이스가 조직 내 홍일점인 점을 철저히 이용했다면 힐러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영향력을 넓혀왔다. 라이스가 적을 만들지 않고 주변과 친화한다면 힐러리는 곳곳에 적과 ‘안티’를 만든다.92년 남편의 대선 지원연설 때 “집에서 쿠키를 굽거나 차를 끓이는 일도 좋지만…”이란 ‘쿠키 발언’으로 전업주부들을 격분케 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지만 흑인임을 내세우지 않는 라이스와는 대조적이다.

힐러리와 라이스가 2008년 미 대선에서 붙을 가능성은 낮다.“이기려고 뛰어들었다.”는 힐러리 같은 전투의지가 승산있는 일에만 뛰어든 라이스에게도 있을지 흥미롭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07-01-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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