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시어머니의 ‘행복론’/정은주 지방자치부 기자
수정 2006-10-21 00:00
입력 2006-10-21 00:00
양가 부모님이 상견례하던 날, 친정 어머니는 걱정스레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뵙고 나니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으신가 보다.
시어머니는 1999년 울릉도 여행길에 올랐다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헬리콥터에 실려 병원에 도착,5시간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하반신 부분 마비라는 후유증이 찾아왔다. 쉰살을 갓 넘긴 나이에 혼자 걷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 후 시어머니는 ‘행복찾기’에 나섰다.
행복찾기 하나, 손잡기.
시부모님은 나들이 나갈 때 손을 꼭 잡는다. 지팡이나 휠체어가 있어도 시아버지가 손을 고집한다.“매일 결혼식장에 입장하듯 살고 싶어서”라고 농담처럼 말씀한다. 생사의 문턱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리라. 그래서인지 시부모님의 걷는 모습이 갓 연애를 시작한 20대처럼 애틋하다.
시어머니는 두 며느리를 양쪽으로 의지하며 걷길 좋아한다. 아들들이 나서도, 키가 비슷한 며느리들과 걸어야 편하다고 물리친다. 첫 발을 내디딜 때 고부는 휘청거린다. 발걸음이 맞지 않아 균형을 잃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라는 시어머니의 귀띔에 고부는 행진하듯 발을 척척 맞춘다. 몸으로 조화를 가르치는 것이다.
행복찾기 둘, 인터넷.
시어머니는 인터넷이라는 친구를 얻었다. 고스톱은 물론이고 검색, 메신저, 쇼핑, 금융거래까지 함께 한다.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성경책을 베끼며 타자를 연습했다. 그러다 고스톱 삼매경에 빠져 사이버머니를 10억원쯤 모았다. 돈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즐거워하신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어느날부터 포털사이트에서 며느리 기사를 찾아 읽고, 싸이월드에 ‘힘내라.’는 쪽지를 남긴다. 요즘은 동네 아줌마들을 대신해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저렴하지만 좋은 물건을 골라 준다.
시어머니께 행복찾기를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다음에 진짜 떠날 때는 ‘나는 행복했다. 너희들도 행복하라.’고 말하고 싶어서.”
ejung@seoul.co.kr
2006-10-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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