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전업작가와 인공위성/문흥술 서울여대 문학평론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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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8-03 00:00
입력 2006-08-03 00:00
한 전업소설가가 있다. 그의 작년 수입 명세서를 보자. 그는 작년에 단편을 5편 발표하였다. 현재 우리 문단에서 단편소설 한 편을 쓰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원고료가 100만원이다. 그나마 그만 한 돈을 주는 출판사는 불과 한두 곳뿐이며, 보통은 편당 40만∼50만원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그는 원고료로 300만원가량을 받았다. 그리고 그 외 강연, 잡문 기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500만원을 벌었다. 그래서 작년 총수입이 800만원이다. 그에게 그 돈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그저 쓸쓸히 웃을 뿐이다.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번에 발사에 성공한 아리랑 2호 위성이야말로 대단한 사건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위성은 지상 1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광활한 우주에서 도심의 한 복판에서 움직이는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잡아낼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이번 위성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고해상도 위성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경험한 나라가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이처럼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 선 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세계에서 일곱 번째 위성을 가진 나라, 그것이 우리나라 현재의 위상이다.

70년대 발표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우주선 이야기가 나온다.‘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모순된 사회에서 철저하게 억압받던 난쟁이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난쟁이가 꿈꾼 사회는 작품에서 달나라로 상징되는데, 난쟁이는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센터의 관리인 로스 씨’의 도움을 받아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불가능한 일. 결국 난쟁이는 굴뚝에서 뛰어내리고 만다.

난쟁이가 달나라로 가기 위해 미국 우주센터, 그것도 관리인의 도움을 받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했던 것이 70년대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 관리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달나라에 갈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난쟁이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머지않아 난쟁이는 그토록 갈망하던 달나라에 우리의 우주선을 타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발표된 현진건의 ‘빈처’라는 작품에 전업작가가 등장한다. 작가가 소설 쓴답시고 생활비를 전혀 벌지 못하자 아내가 살림살이를 전당포에 하나씩 잡히면서 힘겹게 살아가지만,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났건만, 전업작가의 생활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전업작가가 풍족한 생활은 못하더라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전업소설가가 서울을 떠난다는 연락을 해왔다.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세희의 난쟁이처럼 달나라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부디 좋은 작품 많이 쓰라는 위로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맞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의 발상을 문득 떠올렸다. 그 발상은 약소국을 무시하는 강대국의 횡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문인을 존중하는 영국인의 문화적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을 존중하는 영국인의 문화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셰익스피어에 버금가거나 그를 넘어설 수 있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지금의 우리나라가, 달나라에 가고 싶어 하는 전업작가가 타고 갈 우주선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가난해서인가, 아니면 무관심 때문인가?

문흥술 서울여대 문학평론가 교수
2006-08-0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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