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용병술/한종태 논설위원
한종태 기자
수정 2006-06-15 00:00
입력 2006-06-15 00:00
만약 전반전의 0-1 상황이 후반전까지 이어져 끝내 토고에 졌을 경우에도 그랬을까. 답은 분명 ‘아니다.’일 것이다. 사실 전반전은 답답하다 못해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한국 축구 특유의 스피드와 조직력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쓸데없는 잔 패스와 백 패스가 자주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패배의 걱정 속에 시작된 후반전이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용병술로 대반전을 이루게 될 줄이야…. 수비수 김진규를 빼고 안정환을 처진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진시킨 것이 기가 막히게 적중한 셈이다. 안정환이 들어가면서 조직력이 살아났고 그 결과 동점골과 역전골이 터진 것이다.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하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고 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포메이션까지 3-4-3에서 4-4-2로 바꿨다.‘모 아니면 도’의 도박이란 비난을 받을 법했다. 그러나 그는 승리했다.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히딩크 감독이 수비수 3명을 빼고 공격수 3명을 투입해 동점골과 연장 골든골을 뽑아낸 장면처럼. 더 이상 다른 말이 나올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흔히들 감독은 피 말리는 직업이라고 한다. 경기 결과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 때문이다. 성적이 나빠 월드컵 기간 중 교체된 감독들도 있지 않은가. 호주에 1-3 역전패를 당한 일본의 지쿠 감독 역시 죽을 맛일 게다. 용병술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다.
토고전에서도 왜 안정환을 전반부터 뛰지 않게 했느냐부터 훨씬 기대에 못미친 조재진을 일찌감치 빼지 않은 이유 등등 여러 지적이 많은 것 같다.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컨디션과 제반 상황을 꼼꼼히 체크, 베스트 11을 선발한다. 하지만 믿었던 선수가 부진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어느 시점, 누구를 불러들이고 또 누구를 집어넣느냐에 따라 그날 경기의 명암은 갈라지게 된다. 정치에서 인사가 만사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뒤늦은 승부수는 필요없다. 명장(名將)일수록 그 시점을 잘 안다.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2006-06-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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