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고독의 영토를 위하여/황수정 문화부 기자
수정 2006-05-20 00:00
입력 2006-05-20 00:00
언제부턴가 출퇴근길 광화문 대로의 횡단보도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사물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남녀노소 없이 신종병기처럼 불끈 거머쥔 휴대전화들. 분초를 다툴 일이 저리들 많을까, 우울하고 민망한 살풍경같아 내 손의 병기를 가방 속으로 슬며시 밀어넣곤 한다.
휴대전화의 첨단능력이 나날이 찬미의 대상이 되는 판에 이 무슨 뒷북 감상이냐고 핀잔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고독해지려야 고독해질 여지가 없는, 침묵을 저당잡힌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안쓰럽다. 자기와의 내면대화에 갈수록 서툴러지고 있는 책임을, 단발성 전방위 소통창구인 첨단문명들에 돌려버린다면 그건 억지일까.
최근 한 광고기획사의 면접조사 결과가 흥미로운 뉴스였다. 요즘 중·고생들은 회초리보다 휴대전화 뺏기는 걸 더 두려워한다는 조사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몇달전 중학생 조카에게서 들은 우스갯소리가 현실이었던 셈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건 ‘악플’(악의적 댓글), 악플보다 더 무서운 건 ‘무플’(인터넷에 올린 글에 답글이 없는 것), 무플보다 더 무서운 건 휴대전화 없는 세상?
밖으로의 소통에만 목마른 삶을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바로 그 얘기이다.
실다운 논쟁이 없는 것도, 그릇 큰 논객이 사라진 것도 모두 고독과 침묵을 거세해버린 문명 탓은 아닐까. 어느 시인의 말대로 고독한 이들의 영토가 시(詩)라면, 문학이 시들고 있는 현실 또한 그 때문은 아닐까.
혐연권만큼이나 ‘혐통권’도 똑같이 존중돼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휴대전화 금통(통화금지)구역은 언제쯤이나 생길까. 사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독의 영토를 돌려줄 시간이다.
황수정 문화부 기자 sjh@seoul.co.kr
2006-05-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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