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밤을 꼬박 새워 작명책을 본 적이 있다. 아들 녀석의 이름을 짓기 위해서였다. 대학 때 주역을 조금 공부한 터라 쉬울 줄 알았다. 우선 돌림자를 따라야 했다. 이는 집안 대대로 거역할 수 없었다. 집안 어른들이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폭도 그만큼 좁았다. 이름에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담는 것은 기본. 이름값 한다고 하지 않는가. 전체 획수도 따져야 했다. 이리저리 맞춰봐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작명 전문가나 유명 역술인을 찾는가 싶었다. 어쨌든 아들 녀석의 이름은 직접 지어줄 수 있었다.4∼5년 전 책장속에 푹 파묻혀 있던 작명책을 다시 꺼냈다. 조카 녀석이 아들을 낳은 것이다. 주례선생을 소개해 주었으니 이름도 지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한사코 사양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아들 녀석의 이름을 지을 때보다 훨씬 신경이 쓰였다. 책도 1권 더 구입했다.2∼3일 걸려 두 세개의 이름을 건넸다. 이름까지 지어준 할아버지가 됐다. 그 놈은 그러한 사정을 아는지 친할아버지 이상으로 따른다. 이번 주말에도 한바탕 뒹굴 수 있어 기대된다.
오풍연 논설위원
2006-03-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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