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봄비스케치/최종찬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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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6-03-13 00:00
입력 2006-03-13 00:00
까칠한 신새벽 우윳빛 구름타고 내려와

꾸벅꾸벅 조는 경비원의 한 생애 탁본하고

불면증으로 신경 곤두선 가로등 달래주면



침울하던 아파트 단지에 도는 생기

숨어있던 사연들 가구마다 뛰어나와

켜켜이 쌓은 서로의 이야기로 소란스럽다



절대고독의 방에서 울고 웃는 이들을 위하여

비밀 하나 허공의 노트에 귀띔하고

또 하나 우편함 어둠 속으로 밀어넣으면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성급한 개나리

빗방울 타고 베란다 창문 열고 들어와

잠자는 아이 얼굴에 환한 미소 짓게 한다

야근을 끝내고 귀가하던 어느 새벽녘 아파트 입구에서 봄비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오랜 외로움에 지쳤는지 정말 반갑게 나를 맞이합니다. 그 너머 경비실에서는 아저씨가 밤샘 노동에 지쳤는지 머리를 연방 조아리고 개나리는 수줍은 듯 얼굴을 못 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꿈나라에 있는 신새벽 봄비가 빚어내는 작은 세상을 그려봤습니다.

최종찬 편집부 차장 siinjc@seoul.co.kr
2006-03-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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