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그리운 악마/임태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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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순 기자
수정 2006-03-09 00:00
입력 2006-03-09 00:00
점심에 만난 친구가 ‘나 열받았다.’라는 이메일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 졸업식에 갔다 쓸쓸하게 혼자 돌아온 아버지가 보낸 것이었다.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돼 만사 제쳐놓고 달려갔다고 한다.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예쁜 꽃까지 준비하니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불쑥 커버린 딸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교정을 오가며 열심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졸업식이 끝나면 근사한 곳으로 가 점심도 먹고 선물도 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갔다 온 딸은 “아빠, 친구들하고 점심먹기로 했으니 먼저 가.”하더니 친구들에게 달려가더란다. 그날따라 비는 왜 그리 추적추적 내리던지. 아버지는 연인 같은 딸에게 버림받은 쓰라린 심정을 이수익 시인의 ‘그리운 악마’란 시로 달랬다.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있으면 좋겠다./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그/악마같은 여자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정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06-03-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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