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유시민, 악덕과 미덕사이/심재억 사회부 차장
수정 2006-02-13 00:00
입력 2006-02-13 00:00
속물들 생각으로야 어차피 ‘사는 게 고해(苦海)’이니 한 몸 입신하고, 양명한 대가로 치면 그런 과정이 오히려 헐값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한번도 좌굴(挫屈)을 허용하지 않았던 그가 정장에 표나는 분장,2대8 가르마를 하고 ‘존경하는’이라는 수사를 남발해야 했던 인사청문회를 거쳐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한 곳은 어디일까.
아직 액면의 진위를 가릴 계제가 아니지만, 유 장관의 취임사는 이런 의문에 대한 하나의 해법일 수는 있다. 그는 먼저 “다른 모든 것을 다 잊으려 한다.”고 운을 뗐다.“국민을 섬기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그가 말한 ‘국민’이 포괄적 의미는 아니다. 그는 스스로 섬겨야 할 대상을 ‘어르신’과 ‘병들고 가난한 이웃’,‘장애인’으로 특정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당연한 범주의 설정이지만, 또한 여기에 그의 지남(指南) 의지가 담겼을 것이란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확실히 정치인 유시민은 ‘미덕’과 ‘악덕’의 경계를 오갔다. 일부에서는 그의 끊임없는 파괴 의지를 ‘돌출’이라거나 ‘싸가지 없다.’고 매도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그의 파괴적 열정이야말로 구각의 청산이자 창조를 위한 파종”이라고 두둔했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를 두고 이렇게 극명한 해석을 낳은 정치인도 흔치 않았다.
그런 유 장관이 ‘사람들’ 속으로 왔다. 보건복지 현장은 정치적 악덕이 혹은 미덕이기도 하고, 그 미덕이라는 게 또한 악덕일 수도 있는 곳이다. 정치판에서는 오로지 악덕으로만 읽혔던 네그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시구가 민초들에게는 가슴을 덥히는 금언이듯 그의 또 다른 시작이 새삼 관심을 끈다.
그는 다시 미덕과 악덕의 어느 경계를 질주할 것인가.
심재억 사회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6-02-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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