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느린 동네/임태순 논설위원
임태순 기자
수정 2006-01-05 00:00
입력 2006-01-05 00:00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할머니가 문간방에서 ‘누가 왔냐’며 고개를 내민다.87세의 고령이었지만 정정했다. 문간방 입구에 쳐놓은 비닐 구멍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기른 아들이 있었지만 생모(生母)를 찾게 되자 떠나갔다고 한다. 딸은 생활이 어려워 서로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봉사단체 회원은 “재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달동네엔 더 이상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면서 “그래서 동네가 참 느리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연탄이 배달되면 가스에 중독되지 않게 잘 가세요.” 하자 “연탄가스에 중독돼 소리없이 죽었으면 원이 없겠어.” 한다. 이러다 느린 동네는 죽은 동네가 되는 건 아닌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06-01-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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