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반섞이/심재억 문화부 차장
수정 2005-12-28 00:00
입력 2005-12-28 00:00
그 시절, 농가 식도락의 요체는 반섞이였다. 말이 반섞이지 7∼8할이 보리고 쌀이라야 고작 2∼3할이지만 그 맛을 요즘의 눈부시게 흰 쌀밥과는 견줄 수가 없었다. 곱삶이 앉힐 적에 ‘꼴랑’ 쌀 한 접시 씻어 얹고 지은 뒤 할머니와 아버지 밥을 옴팡지게 도려 퍼담고는 뒤죽뒤죽 섞어 반섞이를 만들었다. 쌀알이야 ‘어쩌다가 하나’였지만 꽁보리밥과는 찰기가 달랐다.
세상에 그렇게 단 밥이 또 있을까. 석화 향 풍기는 김장김치와 동치미, 짚불에 노릇노릇 구운 갈치구이에 갓 익힌 청국장이 놓인 겨울밥상의 풍요감은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도락이었다. 그런 세상을 살았는데, 요새는 눈부신 흰 밥을 먹어도 도무지 감동이 없다. 내가 바뀐 건지, 세상이 바뀐 건지 모를 일이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12-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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