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민영화 기업들에 거는 기대/김화진 고려대 경영대 겸임교수·미국변호사
수정 2005-10-17 07:39
입력 2005-10-17 00:00
이렇게 숲 속이 번잡해지자 늑대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늑대가 없으니 굽은 길을 따라 여행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굽은 길은 계속 그대로 남아 이용되었다. 사람들은 곡선 거리의 아름다움을 논하기 시작한다. 새로 부임한 영주가 길이 굽어 있어 여행에 불필요하게 시간이 걸린다 해서 길을 직선으로 새로 내려고 하자 온갖 민원과 반대가 쇄도해서 포기하고 만다.
자동차가 등장하고 자동차는 곡선 도로의 주행에 필요한 복잡한 기능을 갖추기 위한 연구개발을 통해 성능이 개선된다. 이제 수백 년이 지나 숲마저 없어졌다. 사람들은 왜 도시의 길이 휘어져 있는지 가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경제학자들이 이른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개념을 설명할 때 드는 사례다. 현재의 상태가 비효율적이지만 현재의 상태는 초기 조건에 의해 강하게 규정지어져 있어서 비효율성이 제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비효율성은 경제적 시각에서 판단되지만 늑대 숲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초기 조건은 주로 정치적(늑대), 사회적(주거지), 문화적(곡선의 미) 성질의 것들이다.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에도 경로의존성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현재의 비효율성이 간단히 제거될 수 없는 이유가 주로 초기 조건들 때문임이 최근의 여러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소유지배구조가 속 시원하게 바뀌지 않음을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항상 긴 역사적 과정의 맨 끝에서 현재의 조건으로 수백, 수천 배나 길고 강한 과거의 조건하에 만들어진 문제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논의에서 이른바 그랜드 디자인 대 진화의 대칭이 종종 발견된다. 예컨대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복잡한 소유지배구조가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과 의도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결정하고 지어가다 보니 지금과 같이 된 것인지의 시각 차다. 양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그랜드 디자인론이 딱 들어 맞는 사례가 바로 민영화된 구 국영기업의 소유지배구조다. 국영기업을 민영화할 때는 소유지배구조를 장기간의 연구를 거쳐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형태로 짜서 이리 재고 저리 재 본 후에 시장에 내 놓을 수가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구 국영기업들이 이러한 ‘특전’을 누렸다. 완벽하게 도시계획을 해서 도시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도시들은 길들이 대개 직선으로 그어져 있다. 여기서 자동차들은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불필요한 부품 때문에 괜히 가격이 비싼 것이다.
민영화된 구 공기업들이 미래의 대기업들에 모범적인 소유지배구조의 모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경로 의존성 때문에 일반 대기업들에 그 역할을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민영화된 공기업’이라는 이상한 말부터 없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 계속 남아 있는 정부와의 보이지 않는 인력 작용도 제거해야 한다. 국영기업 시절의 특이한 소유지배구조 조건들을 제거해서 회사가 국제화된 시장 규율에 바로 노출되도록 등을 떠 밀어야 한다. 이는 경영진, 임직원들에게 부담인 동시에 인센티브의 기반이 될 것이다. 초기조건인 사업의 공익성마저 경제적인 효율성의 디자인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이 기업들의 역할에 관심을 가질 때다.
김화진 고려대 경영대 겸임교수·미국변호사
2005-10-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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