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섹스리스(Sexless) 부부/표진인 정신과 전문의
수정 2005-10-11 00:00
입력 2005-10-11 00:00
이렇게 인간은 조물주의 선물을 아주 유용하게 써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간이 받은 또 다른 선물이 ‘즐거움을 위한 성(性)’인데, 동물은 발정기때 이외에는 교미를 거의 하지 않지만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즐기고 가임기를 피해서 즐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임방법을 써가면서까지 섹스를 한다. 성을 돈을 주고받으며 사고팔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성은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확실한데, 더 이상 성이 즐겁지 않은 현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성문제는 연구소나 상담소 같은 의료인이 주도하지 않는 곳에서 다루기도 하지만 보통 비뇨기과, 산부인과, 정신과에서 치료하고 있다. 정신과에 성문제로 오는 가장 많은 비율이 바로 ‘섹스리스(sexless)’이다. 한달에 한번도 섹스를 하지 않는 부부를 말한다. 신혼때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신혼때는 활발하다가 결혼연수가 지나면서 서서히 횟수가 줄어들어 결국 전혀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섹스리스 부부는 일본과 우리나라에 특히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떤 조사에 의하면 30대 부부 4쌍중에 한쌍이 이에 해당된다는 결과를 보면 이 조사에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섹스없는 부부는 생각보다 꽤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부들이 병원에 올 때는 일단 부부중 한사람만이 먼저 오는 경우가 많고 간혹 처음부터 부부가 같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혼자 오는 경우는 여자인 아내 혼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내가 섹스를 거부하여 남편이나 시댁의 강요에 의해 아내가 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고, 남편이 거부하여 아내 혼자 맘고생하다 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병원에 오는 경우는 일방적인 회피나 거부에 의한 경우이지만, 보다 많은 경우는 병원에 오지 않는 부부 쌍방의 묵시적 합의에 의해 거추장스러운(?) 섹스없이 사는 경우이다.
부부생활에 성이 차지하는 부분은 막대하다. 부부생활 또는 부부관계라는 말 자체가 섹스를 의미하고 있으니 성생활이 없는 부부의 화목은 쉽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로 인해 이혼하는 부부도 많지만 섹스없이 나름대로 가족으로 살아가는 부부도 많은 것 같다.
“아내와의 섹스는 근친상간”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뭘 귀찮게…”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부부간의 섹스만 멀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섹스 자체를 아예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섹스를 기피하는 모습도 다양하고 그 이유도 다양하다. 배우자에 대한 애정이나 성욕이 없는 경우도 있고, 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인한 과도한 억제 때문인 경우도 있다. 그 외 많은 원인들이 있는데, 그에 따라 치료도 달라지지만 두사람 모두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한번 방문만으로도 100% 완치(?)되는 경우도 많다. 정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조물주의 선물까지도 거부하는 것일까?
표진인 정신과 전문의
2005-10-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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