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다변과 달변/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기자
수정 2005-08-26 08:22
입력 2005-08-26 00:00
동서고금에 말 많은 지도자는 아주 많다. 햄릿형보다 다변가, 웅변가가 대부분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1955년 7월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이뤄진 체 게바라와의 첫 만남에서 “왜 여기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4시간동안 장광설을 늘어놓았다고 한다.“그거 좋은 질문이오.”로 시작된 이 답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으나 혁명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케 한다. 윈스턴 처칠과 플랭클린 루스벨트, 프랑수아 미테랑 등등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들도 저마다 유명한 다변가들이었다.
노 대통령의 다변(多辯)이 새삼 화제다. 집권 반환점을 맞아 정신없다 싶을 정도로 굵직한 화두를 연일 던지고 있다.25일엔 방송에까지 나왔다. 사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전부터 언변이 좋은 정치인이었다. 말 잘하는 DJ도 말수로는 대적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DJ와 달리 집권 후 말수가 늘어난 점도 차이다. 단순비교는 어렵겠지만 노 대통령이 취임 직전 대구의 공개토론회에서 한 말은 1만 6000자, 광주 토론회에서는 1만자였다.
지도자의 다변은 탓할 일이 아니다. 비전 제시라는 측면에서 덕목일 수도 있다. 문제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다. 닉슨은 말을 잘했지만 케네디에게 졌다. 투박한 말투로 아는 만큼 쏟아내는 닉슨에 맞서 케네디는 부드러운 미소로 TV 너머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루스벨트가 지금껏 사랑받는 이유도 밤마다 라디오를 통해 전쟁의 상흔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던, 도란도란한 목소리 때문이다. 임금의 말은 ‘윤음(綸音)’이라 했다. 비단처럼 귀하고 곱다는 뜻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부터 듣기에 숨차다니, 좀 걱정스럽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2005-08-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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